홍명보 커리어 및 스페셜 동영상 이야기

 

 

 

한국축구의 역사를 논할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이름이 홍명보 입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 카리스마 홍명보 등등 그에 대한 수식어는 많습니다.

그만큼, 최고의 선수이자,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였습니다.

홍명보는 1990년 ~ 2002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수비의 핵으로 10년넘게 활약하며

엄청난 커리어와 카리스마를 보여준 선수 였습니다.

 

홍명보 선수의 수비는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그런 수비수가 아니라 상대 공격의 맥을 끓어버리는

지능적인 플레이가 압권이었던 선수 였습니다.

무엇보다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수비라인 및 팀전체를 통솔하는 리더쉽이야 말로

10년넘게 홍명보를 한국대표팀의 부동의 수비수로 존재하게 만든 근원 이었습니다.

 

운동장 전체를 꿰뚫는 폭넓은 시야와 전방으로 연결하는 날카로운 패스, 노력한 경기 운영 능력

적절한 수비위처선정은 홍명보로 하여금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라는 별명을 안겨줬습니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리베로라고 할만큼 공격적인 수비수 이면서 가장 수비적인 공격수...즉

리베로의 전형이었습니다.

 

 

홍명보 스페셜 동영상 이야기

 

 

 

홍명보 커리어 이야기

 

 

홍명보는 고려대 재학시절에 평범한 선수에 불과 했지만 남대식 감독이 스위퍼 재능을 간파하면서

재능이 꽃피게 됩니다. 수비수로서 피지컬과 스피드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탁월한 예측력과 전술 이해력을 바탕으로 공이 가는 길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수비진을 조율했습니다.

 

4백보다는 3백에 특화되었고 일반적인 센터백 보다는 스위퍼 위치에 적합 했습니다.

출신이 미드필더인지라 롱패스가 상당히 정확했고 그로 인해 꽤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줬으며

같은 포지션에 같은 성향을 지닌 베켄바워와 비견되기도 했습니다. 카리스마와 리더쉽 등으로 팀동료 사이에서도

항상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1990년 부터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동하면서 4개 대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했습니다.

K리그 에서는 1992년에 데뷔하게 되는, 데뷔시즌 부터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소속팀인 포항도 우승을 시켰습니다. 처음 시즌부터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됐던 홍명보였습니다.

등장부터가 정말 화려 했습니다.

 

홍명보 커리어 이야기의 시작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이었습니다.

독일, 스페인, 볼리비아와 함께 같은조에 편성되어 16강 진출을 노렸습니다.

첫경기 스페인에서는 한국의 대 선전으로 2:2 무승부를 키록하며 파란을 일으킵니다.

종료 5분을 남기고 홍명보 선수의 프리킥골과 서정원 선수의 극적인 동점골이 이어지면서 16강 진출에

희망을 이어가면서 2차전 볼리비아 전에서는 수많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0-0으로 비깁니다.

 

마지막 독일과의 경기

전반에는 3골을 내주고 경기가 기울어 가던 시점에 체력이 빠진 독일을 상대로 한국은 막판 저력을 발휘합니다.

황선홍 선수의 첫골이 터지고 나더 드디어 홍명보 선수의 멋진 중거리 슛으로 3-2까지 추격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회에서 골을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2무1패로 탈락합니다.

그러니 이대회 홍명보 선수의 2골으 한국축구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고 홍명보 선수는 영웅이 되어 귀국 합니다.

 

월드컵이 끝나자 마자, 일본과 유럽의 명문 클럽팀들까지 홍명보에게 스카웃제의를 합니다.

그러나 소속팀의 반대 등으로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야, 유럽진출이 일반화된 현상이지만, 당시에는 소속팀이나 한국 자체적으로 해외진출을 막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결국은 한국에 남게 됩니다.

만약 이시기에 홍명보가 유럽에서 활약했다면 지금의 명성은 더 높아졌을거라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한국에서 활약하던 홍선수는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J리그 벨마레로 진출 합니다.

그리고 명언을 한다디 남기게 되죠.

" 내몸은 일본에 있지만 영혼은 한국에 있다" ㅋㅋㅋ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선수임에 틀림 없습니다.

벨마레 데뷔전은 스위퍼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 합니다.

 

그러나 보복행위로서 백태클이 들어오자 밟아 버리고.. 레드카드를 받습니다.

당시 벨마레에는 일본대표 로페스와 나카다가 있어, 레베로 홍명보가 아닌, 수비의 구심점을 맡길 바랬고

자연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 팀 재정이 악화되면서 자구책으로 고액연봉자들 팔기 시작했고 홍명보도 트레이드 시장에 나옵니다.

 

홍명보가 일본 축구팬에게도 커다란 존경과 애정을 사는 이유도 이당시 활약상 때문이었습니다.

홍명보는 2000년에 가시와 레이솔팀의 주장까지 맡게 됩니다.

그만큼 홍명보 만큼은 많은 신뢰를 받았으며, 엄청난 존재감이었습니다.

1999년 소속팀의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0년에는 제이리그에서도 당당히

베스 11에 선정 됩니다.

 

90년대 홍명보는 아시아 전체에서 손꼽히는 수비수중 한 명이었으며 아시아의 리베로로 불렸습니다.

일본게에 있어서 홍명보는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넘어야만 했던 벽이었습니다.

홍명보가 출장했던 축구 한일전에서 일본이 이긴적은 1993년... 딱 한번이었습니다.

일본의 많은 축구 관계자들이 항상 홍명보만 없었으면 .. 하고 탄식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이렇기에.. 우리에게는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홍명보 선수는 평상시에는 조용하면서도 쿨하게 보이는 이미지인데, 경기장에서는 달라집니다.

수비위치선정이 뛰어났고, 시야가 넓었습니다. 근성있게 수비했으며, 특히 세련된 패스감각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강한 정신력, 리더쉽, 조율능력, 한마디로 팀의 기둥과도 같은 선수 였습니다.

요즘도 인터뷰 할때면 홍명보는 정신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마음가짐의 중요성은 몇번이나

강조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흔히 홍명보를 표현할때 리베로라는 포지션을 많이 떠올리지만, 실제로 대표팀 시합에서는 수비에 치중하거나

공격에 가담한다고 해도 제한적인 경우 - 전방에서 워낙 공격이 안풀리니 어쩔 수 없니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홍명보 스페셜 국가대표 이야기

 

16세 이하 대표팀부터 월드컵 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비수 였고, 공격의 황선홍과 함께

9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였습니다.

1994년에도 월드컵때는 수비수로서 2골을 넣었었고, 1998년 월드컵 때에도 수비의 중심과 핵으로서

참여했습니다. 거기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시아 월드컵 최다출전경기 기록 보유자 (16경기 )

 

국가대표 생활로서 커리어 정점을 찍었던 그대회... 한국 사람이라면 다기억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었습니다.

본선만 나가면 1승조차 하기 어려운 한국을 수비와 팀 구심점 역할을 하며 기적과도 같은 4강까지 진출시키고

브론즈볼 수상하면서 , 이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한국 선수 가운데 A매치 최다출전 ( 135경기 )과 유일한 월드컵 4회 연속 참가 기록을 가졌습니다.

 

 

홍명보 스페셜 마지막 이야기

 

홍명보 선수는 낳은 최고의 축구스타였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 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쉬운 부분은 바로 해외진출 입니다.

그리고 바로 홍명보 선수에게 영입의사를 밝혔던 팀이 바로셀로나와 AC밀란 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만약 바르샤나 AC밀란을 갔었다면, 어쪄면 말디니와 함께 AC밀란을

책임지는 수비수로서 더 높은 명성을 쌓았일지도 모를 입니다. 그러기에도 충분한 실력과

인성,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선수였으니까요.

아시아가 아닌 더큰 무대에서 못뛰었떤게 너무 아쉬운 부분입니다.

 

한국 축구는 홍명보 은퇴 이후 계속적으로 고질적인 수비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항상 수비적인 재능을 보이면 제2의 홍명보라고 하는 선수들이 계속 나오고는 있찌만,

은퇴이후, 10년동안 반짝하고 들어가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홍명보 못지 않은 제대로된 수비수를 발굴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금은 감독직을 수행했지만, 현역생활부터 꿈이라고 밝혀온 행정가의 길을 꼭 갔으면 합니다.

 

Posted by 너네통닭
,

더이상 조연이 아니다 " 안드레이 이니에스타 스페셜 "

 

 

현재 세계축구를 양분하고 지배하고 있는건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입니다.

그러나, 안드레이 이니에스타 또한, 절대 빠질 수 없는 선수라고 할 수 있죠.

세계최강인 스페인대표팀에서는 에이스 역할을 하는것은 틀림없지만,

FC 바로셀로나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함에도 불구하고

리오넬 메시의 빛에 가려진게 사실이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현역 자타공인 탑 미드필더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년간 활약한 경기만 보더라도, 스페인대표팀과 FC바로셀로나 양쪽모두에서

경이로운 활약을 하는건 안드레이 이니에스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바르샤 소속으로는 모든것을 이뤘고, 스페인대표팀에서도 에이스급 선수로 활약하며,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축구와 바르샤 축구는 환상적인 패싱력을 기본으로 하는 점유율 축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그중심에는 안드레이 이니에스타와 현역최고의 패스마스터로 불리는

사비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리오넬 메시가 경이로운 활약을 이어가는데는 안드레이 이니에스타와 사비가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흔히, 이니에스타, 사비 , 리오넬 메시를 바르샤 3각편대라고 하죠.

리오넬 메시가 가진 능력도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안드레이 이니에스타와 사비가 뿌려주는 패스는 리오넬 메시를 더욱더 돋보이게 합니다.

 

안드레이 이니에스타의 포지션은 윙포워드, 공격형미드필더, 중앙미드필더 모두 소화합니다.

다재다능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죠.  좌우 중앙가릴거 없이....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윙포워드로 많이 출전하고, 바르샤에서는 사비앞에 중앙미드필더로 많이 출전합니다.

어느 포지션에서 활약을 하건간에, 항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비 에르난데스와 잠시 비교를 하면,

사비는 현역최고의 패스마스터 답게,

중앙에서 최고의 패싱력과 키핑력으로 경기전체를 조율하고 이끌어 간다면,

안드레이 이니에스타는 그공을 받아서 상대 수비진을 휘저으면서,

메시나 다른 선수들에게 마무리 킬패스를 많이 넣어줍니다.

키가 넣어주는 마지막 킬패스는 아크로바틱... 환타스틱 그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이 이니에스타는 키가 170cm 단신이고, 왜소한 편이지만

절대 뺏기지 않는 볼키핑력과 완벽한 기본기와 개인테크닉, 패싱력등 모든면에서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메시와 맞먹는 드리블, 순발력과, 유연성까지... 헤아릴 수 없을정도로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입니다.

피지컬적인면이 약점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그약점을 커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드필더로서 많은 활동량은 기본이고, 현란한 드리블과 개인기로 상대수비진을 농락하는 모습을 보면,

사비와 지단을 합쳐놓는듯한 기분을 들게하기도 하는 선수다.

종종, 리오넬 메시를 욕하는 팬들은 이니에스타와 사비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니에스타가 뒤에서 메시에게 해주는 역할이 많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안드레이 이니스에스타를 TV에서 처음본건 2004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수원삼성이란 친선전을 하는 경기였는데, 그때는 뛰어난 유명주 수준?

같이 내한했던 바르샤 멤버 자체가 후덜덜했기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죠.

후반 교체멤버로 잠깐 얼굴을 빚친게 다였으니까요.

웃긴얘기지만, 안드레이 이니에스타 이런 엄청난 선수로 발전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 미안 이니에스타 ;; )

 

 

 

 

이후에, 계속해서 FC 바로셀로나에서 성장했던 안드레이 이니에스타는

2006년 포텐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레이 이니에스타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시기는 05-06시즌

AC밀란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경기였습니다.

지금이야 바르샤가 최강이지만, 당시 유럽최강은 AC밀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던 카카, 세브첸코, 카푸, 말디니 , 피를로 등등 포진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경기에서 주전 미드필드였던 데쿠를 대신해서 안드레이 이니에스타가 출전합니다.

결국 엄청난 활약으로 1-0 승리의 주역이 되죠.

데쿠의 복귀로 아스날과의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4강전에서 임팩트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전세계축구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06-07시즌에는 본격적으로 바르샤 주축멤버로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시기를 기점으로 월클반열에 올라섰고, 3년간 이어져오던 유망주 꼬리표를 때버렸습니다.

이후, 스페인대표팀에서도 승승장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라마시아 바르샤 유스출신으로서 바르샤에서의 입지를 굳쳐가던 안드레이 이니에스타는

레이카르트감독을 대신해서 부임한 과르디올라 감독을 만나서면 실력이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사비와 안드레이 이니에스타 ,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기 시작했고,

현재 바르샤가 추구하는 패싱축구와 점유율 축구를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한 결과가 08-09 시즌,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이었습니다.

 

08-09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결승에 진출시켰고,

맨유와의 결승전에서 에투에게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FC 바로셀로나 소속으로서 뛰어난 활약을 기본으로, 스페인대표팀에서 승승장구 합니다.

유로2008 우승멤버로 활약하며, 스페인 무관의 제왕의 한을 풀었고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우승까지 하며, 월드컵 첫 우승이라는 커리어도 쌓게 됩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네덜란드와의 연장후반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에 절대적인 기여까지 하게 됩니다.

 

2년뒤 열린 유로2012대회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하며, 스페인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쌓습니다.

유로2012대회에서의 뛰어난 활약은 유럽 발롱도르 수상까지 이어지게 되죠.

 

안드레이 이니에스타 스페셜? 전성기??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리오넬메시, 사비에르난데스 등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죠.

이젠, 스페인과 바르샤에서 안드레이 이니에스타가 없으면,

허전하고, 경기가 풀리지 않을정도로 최고의 선수가 된지 오래입니다.

역시 바르샤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고, 스페인 대표팀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 제패를 위해서

순항중입니다. 그중심에는 단연 안드레이 이니에스타가 있습니다.

 

 

안드레이 이니에스타 스페셜

 

Posted by 너네통닭
,

손흥민의 끝없는 진화 ~ 세계적인 공격수로 성장한다.

 

 

 

손흥민은 현재를 기준으로, 해외파 , 국내파 스트라이커중,

가장 잘나가는 공격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10대 후반때, 이미 함부르크로 진출해서, 유스시스템을 거쳤으며,

현재는 독일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의 주축공격수로 성장했다.

손흥민 나이가 1992년생 20살이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속도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손흥민의 플레일스타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릴적부터 국가대포 축구선수 출신이였던 아버지의 지도아래,

탄탄한 기본기를 익혔고, 한국선수 두드러진 특징인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슈팅 타이밍이 반박자 빠르고, 속도와 정확도가 전혀 줄지 않는다.

 

화려한 테크니션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드리블과 주력, 순발력

패싱력, 위치선정, 축구지능등 모든면에서 평균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피지컬에 의존하는 공격수가 아닌, 지능형의 스마트한 공격수가 더 맞는듯하다.

그러나 요즘 플레이를 보자면, 토레스나 이과인처럼 골을 결정짓는 피니셔스타을을 보여주기도 한다.

 

손흥민은 20살의 약관의 선수다.

아직, 배워야할것이 더많고, 드리블링에 있어서도 경험이 부족해서 재대로 활용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수비수들에게 차단당하는일이 많다.

처음에는 수비가담능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요즘에는 많이 보완된 모습니다.

현재 손흥민이 갖춰야할 부분은 경험이다.

 

 

 

손흥민의 성장과정 및 커리어

 

 

손흥민이 지금처럼 성장하는데는 축구국가대표 출신인 손웅정씨의 열린교육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손웅정씨는 축구국가대표로서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고,

이를 계기로 스페인, 독일, 브라질 등 축구선진국들을 다니며 유소년시스템에 대해서 익혔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과 공부를 계기로 춘천FC를 만들어, 앞에 보이는 성적에만 급급한 축구가 아니라,

즐기는 축구를 접목시키며, 손흥민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손흥민은 요새 다간다는 축구교실을 가지 않고 아버지의 개인교습을 받아,

일찍부터 기본기와 개인기를 익혔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도 승부에 집착하고,부담을 느끼는 축구가 아니라,

축구자체를 즐기는 훈련까지 했다고 한다.

 

 

손흥민은 유스시절부터 아버지의 교육을 받고, 원주 육민관중학교 축구부에 입단하게 된다.

중학교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며, 축구명문고인 동북고에 진학한다.

동북고에 오래있진 않았고, 1년을 다닌뒤 자퇴를 하고 독일명문팀중 하나인

함부르크SV 유스팀에 입단을 하게된다.

 

여기에서도 1년의 경험을 쌓은뒤, 2009년 U-17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전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함부르크SV에 재입단하게 된다.

프리시즌전부터 감독과 코치들에게 엄청난 재능이라고 극찬을 받았으며,

스페인 라리가를 떠나 함부르크로 입단한 반스텔루이로부터도

자신의 후계자라는 말과함께 칭찬을 듣게된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 10-11시즌

 

 

손흥민은 시즌 시작전 프리시즌 경기에서 9경기 9골을 넣는 최고의 활약을 한다.

그중에서 첼시전에 넣었던골은 세계적인 센터백인 카르발유와 존테리를 농락하면서 넣었던 골이었다.

그러나 이경기에서 카르발유에게 태클을 당하며 새끼발가락 골절이라는 부상을 안게 된다.

이부상으로, 2개월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된다.

 

2개월뒤, 복귀하며 프랑크푸르트전에 처음으로 1군데뷔 경기를 갖게된다.

득점은 하지못했지만 동료들과의 연계플레이후에 중거리슛을 때리는 모습으로 강인한 인상을 남긴다.

부상으로 폼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FC퀄른 경기에 선발출전하며

자신의 첫 공식적인 데뷔골을 기록하게 된다.

 

이당시 손흥민이 세웠던 골은, 함부르크SV 구단역사상 최연소 골로 기록하게된다.

기존의 기록은 39년전에 세웠던 마니칼츠의 골이었다.

이를 계기로 201년 11월 4일 4년재계약을 맺게된다.

 

붙박이 주전은 아니었지만 교체출전이나, 종종선발로 경기에 나서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고

2010년 11월21일 경기에서는 자신의 2,3호.. 멀티골을 기록하게된다.

첫시즌부터 세계적인 공격수로 발돋음한것은 아니었지만, 14경기 3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 11-12 시즌

 

 

전시즌 프리시즌에서 엄청난 골폭풍을 기록했던 손흥민은, 이번시즌에도 어김없이 최고의 활약을 한다.

원톱의 위치로 나서며 6경기 15골 1도움 이라는 경이로운 활약을 펼치게 된다.

골을 기록했던 팀들이 약체팀이긴 했지만, 손흥민이 어느정도 성장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었다.

또한, 바이에른 뮌헨과의 독일리가 토탈컵 1차전에서는 손흥민 혼자 2골을 넣으며

팀의 2-1승리를 안겼다.

 

많은 한국축구팬들과 함부르크 팬들은, 손흥민의 활약에 계속 기대를 가지게 된다.

리그 두번째 경기였던 헤르타 베를린전에서는 페널티킥을 만들어냈고,

1:1 상황에 역전 중거리슛까지 만들어내며, 승리의 주역으로 남는듯 했으나,

3분을 못버티고 동점골을 허용하게 된다.

 

리그 4차전 fc퀄른전에서는 1도움과 함께, 감아차기 골을 성공하며, 자신의 리그 2호골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헤딩경합도중에 발목부상을 당하며, 교체를 당했고, 팀은 3-4로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손흥민은 이부상으로 6주부상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된다.

 

돌아온후에도, 팀은 최악의 상황이었고, 손흥민도 최악의 폼이었다.

이과정에서 자신을 믿어주던 감독이 해임을 당하고 핑크감독이 부임하면서

출전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게된다. ( 3,4공격수 위치 )

 

그런와중에 2012년 4월14일 하노버96과의 경기에 출전하며 리그 4호골을 기록했고

팀의 1-0승리를 안기게 된다. 팀입장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승리를 한것이었다.

이어서 4월22일 뉘른베르크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하며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게된다.

그러나 경기중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고 만다.

11-12 시즌 통산 30경기 출전에 5골이라는 좋지 않은 기록을 남기게 된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 12-13시즌

 

 

이때부터부터 손흥민이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다.

리그 3차전인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에서 시즌첫골을 기록했고,

4차전,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

골도 골이지만, 팀의 3연패를 끓는 역할을 했고, 디펜딩 챔피언인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의

골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골이었다.

 

리그 7차전 퓌르트와의 원정경기에서는 자신의 4호골을 기록하며 팀의 1-0승리를 안기게 된다.

이로서 손흥민은 4호골을 기록했고, 함부르크sv는 리그8위까지 올라가게된다.

이골을 계기로 손흥민은 유수의 빅클럽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지만,

재계약을 하겠다고 말하며, 이적설을 일축한다.

9차전에서도 5호골을 기록.. 12차전 마인츠를 상대로 자신의 리그 6호골을 기록한다.

이골로서 독일득점랭킹 10위안에 재진입하게 된다.

 

최근 몇경기는 주춤한 상태지만,

다시금 폼을 찾는다면, 손흥민의 활약은 계속될것으로 보인다.

 

 

 

현재 손흥민은 국가대표로서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

손흥민이 가장 주목을 받았던 2011년 아시안컵에 처음을 발탁이 됐고,

예선 3차전인 인도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자신의 첫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게 된다.

그후에도 꾸준하게 A대표팀이 발탁이 되고 있지만, 박주영이나, 다른공격수에게

밀리며, 꾸준한 출전기회를 얻고 있진못하다.

아직 손흥민의 나이가 20살인것을 감안한다면, 시작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까진, 박주영, 이근호, 지동원, 김신욱, 이동국 같은 선배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조금더 높여준다면, 충분히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을것 같다.

 

현재 손흥민 독일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은 센세이션 그자체다.

특급도우미인 반더바르트를 만났고,

꾸준한 출전기회와 함께, 매경기 임팩트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주가가 높아지고 있는만큼 재계약이냐 다른팀으로이 이적이냐.. 말이 많지만,

최근 2~3년전 보단 최고조에 이른 느낌이다.

 

 

 

손흥민 스페셜영상

 

Posted by 너네통닭
,

라다멜 팔카오 인간계가 아닌 신계로 올라설까

  

 

라다멜 팔카오는 콜롬비아를 대표하며 스페인 라리가를 대표하는 공격수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스페인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드는 공격수 반열에 올라선 느낌 (? ) 이라고 할까?

비록 메시와 호날두에 가려서 많은 팬들이 모를 수도 있지만, 공격수 포지션만 놓고 본다면,

세계 넘버원급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는 선수다.

 

공격수로서 큰키(177cm)는 아니지만, 헤딩능력이 뛰어나며, 골결정력이 일품인 선수다.

또한 공격적으로는 만능에 가깝고, 양발을 가리지 않으며 정확한 슈팅능력을 자랑한다.

위치선정 또한 매우 뛰어나며, 활동량과 활동범위, 수비가담, 전술이해도, 포지션 소화능력등

공격수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강심장을 덕분인지 큰경기에서 보여주는 팔카오의 능력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포르투시절 UFFA컵 준결승에서는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혼자 4골을 넣은적이 있고,

결승에서도 1-0으로 승리하는데 골을 넣어 유로파리그 우승을 안기기도 했다.2

2012년 여름에 열린 슈퍼컵 경기에서도 전반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 첼시를 4-1로 침몰시킨적이 있다.

역시 인간계1위다운 면모 !!!

 

 

 

 

라다멜 팔카오 스페셜 영상

 

 

라다멜 팔카오 커리어 이야기

 

 

 

 

초년시절

팔카오는 페어 플레이라고 불리는 콜롬비아 축구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후에 보고타의 CD 미요나리오스라는 팀에 합류했고, 여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아르헨티나 최고 명문팀인 리버플레이트 유스팀에 입성하게 된다.

특이하게 축구를 하면서도 언론학을 전공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살때 팔카오는 레이날도 메를로에 의해 선발로 데뷔전을 치뤘으며 이경기에서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줬다.

리버플레이트 소속으로 환상적인 데뷔전을 치뤘던 것이다.

이후 빠르게 성장하며 유명세를 탔고, 7번 선발출전에 7골을 넣는 득점력을 보여준다.

결국 첫시즌 11경기에서 7골을 넣는 능력을 보여줬다.

 

첫시즌에 환상적인 활약을 했지만, 그후, 십자인대 부상으로 선수생활 유지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부상 복귀하면 또다시 부상을 당하는 일이 자주 반복되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즌통산 아르헨티나 리그 06-07시즌에는 25경기 3골이라는 좋지못한 기록을 보여줬다.

대부분 교체출전이었던 경기들 ......이다.

 

 

부상회복시기

 

 

팔카오는 심각한 십자인대 부상으로 선수생활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2007년 가을 리버플레이트 주전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후, 2007.9.27일 브라질의 보타보고와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남미의 클럽대회인 코파리베르타도레스 8강행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

8강에서도 골을 넣으며 팀을 4강까지 올려놓는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해서 콜롬비아 대표팀까지 승선했고,

2010남아공월드컵 예선 18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팔카오가 복귀했던 07-08시즌에는 팀 최다 득점자로서 35경기 19골을 기록한다.

비록, 다음 시즌에는 리버플레이트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지만,

에이스 역할을 하며 38경기 16골을 넣는 능력을 보여줬다.

 

 

FC포르투

 

 

팔카오 남미에서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받으며 유럽팀들의 관심을 받게된다.

여러팀이 물망에 올랐지만 포르투갈 최고명문인 FC포르투로 옮기게 된다.

이시기 부터 팔카오의 전성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2009.9.15일 첼시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유럽무대 데뷔를 알렸고,

리그6라운드 스포르팅 CP와의 경기에서는 공식 데뷔골을 기록하게 된다.

그후에도 활약은 계속되었고, 2010.4.30일경 20골을 기록하며,

리그득점선수에 오른다.

 

이시기만해도 득점왕에 오르는듯 했지만, 25경기 26골을 기록한,

벤피카의 카르도소에게 밀려 득점랭킹 2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포르투갈 컵대회 결승에서 골을 넣으며 팀 우승에 기여를 했고

시즌 통산 34골을 기록한다.

 

 

팔카오의 유럽첫시즌은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10-11시즌부터 시작이었다.

현, 토트넘 감독인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감독 지휘아래,

헐크와의 막강투톱을 형성하며, 정규리그와 UFFA컵 대회에서 엄청난 실력을 보여준다.

 

리그 득점에서는 헐크에게 밀렸지만,

유로파리그에서 혼자 17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우승까지 하게된다.

결국 시즌통산 39골을 기록한것이다. 또한 리그 무패우승이라는 엄청난 커리어를 쌓게된다.

 

 

AT마드리드 시절

 

 

FC포르투 2년간의 생활은 팔카오 축구인생을 180도 바꿔놓게 된다.

2010-2011 시즌종료후, 팀을 떠날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고,

다음 이적팀은 첼시로 굳쳐지는듯 보였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4000만유로로 스페인라리아 아틀레티고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그중 2000만유로는 AT마드리드가 지불했고, 나머지 2000만유로는 남미의 투자회사가 지불했다고 한다.

(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다. )

 

AT마드리드로 이적을 하고나서도, 괴물같은 활약은 계속 이어지게된다.

스페인 라리가 11-12 시즌 33경기 23골을 기록, 득점3위를 차지하게되는데

1위는 50골의 리오넬메시, 2위는 46골의 호날두 !!!! 3위는 23골 팔카오 !!

이것 때문인지, 신계(메시,호날두), 인간계1위( 팔카오 ) 라는 웃지못할 별명이 생긴다 ㅋㅋ

 

AT마드리드로 이적하자마자, 맨시티로 이적한 아구에로의 빈자리를 완벽히 메웠고,

주무대인 유로파리그에서도 12골을 넣으며 2년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다른팀 소속으로 2연속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커리어를 쌓게 된다.

특히 결승전에서 보여줬던 2골은 순전히 개인능력에 의한 골이었다.

 

현재도 팔카오의 활약은 계속이어지고 있다.

1위는 17골 (메시) , 2위 12골 (호날두 ) , 3위 10골( 팔카오 )

비록 3위에 랭크됐지만, 10골이면 다른리그에서는 선두권이다.

리그를 잘못만난것인지....ㅋ 약간은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스트라이커 포지션으로만 본다면, 최고의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루니, 즐라탄, 비야 , 수아레스 같은 선수들과 비교해도 동급아니면 그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정리해보면...

팔카오가 바르샤, 맨유 , 맨시티 , 등등 탑클래스 클럽에 소속되어 있다면 ?

현재보다 더많은 골을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는데,

앞으로의 행보가 어떻게될지 !!! 궁금해진다.

이적팀 물망에 올라있는 첼시로 갈지... 아니면 다른 라리가 팀으로 갈지 !!!

 

팔카오가 인간계1위라는 별명을 던지고, 신계로 올라설지 ? 궁금궁금 !!!

 

Posted by 너네통닭
,